선인

시세는 잊는다. 결말은 남는다.

기록이 거듭 이름을 남긴 거래자들입니다. 명언은 벽에 걸 수 있습니다. 결말까지 앉아 있는 일은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시간을, 어떤 이는 레버리지를 쥐었습니다.

1894–1976

시장은 단기에는 투표기이고, 장기에는 저울이다.

벤저민 그레이엄 · 가치투자의 문법을 적은 사람.

1929년 이전, 그는 이미 월스트리트의 스타였다. 붕괴는 조합을 거의 지웠다. 그는 그해를 운명으로 쓰지 않고 교과서로 썼다. 안전마진, 미스터 마켓, 가격과 가치의 분리.

이후의 많은 시간을 컬럼비아에서 가르쳤다. 『증권분석』과 『현명한 투자자』는 쫓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시세에 모욕당해도 앉아 있을 수 있는 법을 가르친다. 버핏은 나중에 그를 두번째 아버지라 불렀다.

결말 · 1976년,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산의 전설은 없다. 남은 것은 문장과, 아직 앉아 있을 수 있는 학생들이다.

1930–

남들이 탐욕일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하라.

워런 버핏 · 기다림을 회사로 만들었다.

그레이엄의 학생. 처음엔 담배꽁초, 다음에는 좋은 사업, 그다음에는 거의 팔지 않았다. 코카콜라, 아멕스, 시스. 진입은 창피한 해에 많고, 청산은 달력에 거의 없다.

버크셔는 거래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건물에 가깝다. 신비는 없다. 적은 손, 높은 허들. 현금은 성적의 수치가 아니라 기다릴 권리다.

결말 ·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방법이다. 과열보다 오래 살아야, 장기라고 부를 수 있다.

1924–2023

큰돈은 사고팔기에 있지 않다. 기다림에 있다.

찰리 멍거 · 적게 하는 일을 윤리로 만들었다.

변호사 출신, 나중엔 버핏의 파트너. 잦은 동작을 싫어했고, 복잡함을 총명함으로 위장하는 일도 싫어했다. 멘탈 모델은 서재처럼 들린다. 실제로는 필터다. 대부분의 기회는 버린다.

버크셔 회의에서 그는 누구보다 먼저 지루함을 우위로 불렀다. 놓치는 일은 사고가 아니라 설계였다.

결말 · 2023년, 아흔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끝까지 버크셔 부회장이었다. 기다림에 한 생을 다 썼다.

1877–1940

큰돈을 만든 것은 생각이 아니었다. 언제나 앉아 있는 일이었다.

제시 리버모어 · 앉아 있을 때도 전설, 앉아 있지 못할 때도 전설.

버킷숍의 소년에서 ‘소년 투기꾼’으로. 1907년과 1929년, 붕괴를 공매도하며 이름을 기적으로 썼다. 더 차가운 문장도 남겼다. 롱의 때, 숏의 때, 낚시 갈 때.

기적 옆에는 반복된 가산과 반복된 제로가 있다. 기다림을 알았고, 스스로 그것을 여러 번 끊었다. 책이 사람보다 깨끗하다. 『회고록』의 앉아 있음은, 나중의 포지션보다 규율에 가깝다.

결말 · 몇 번이고 부자가 되었고, 몇 번이고 파산했다. 1940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장부에는 거의 남지 않았다. 명언은 아직 유통된다. 부는 사본을 남기지 않았다.

1906–1999

주식을 사고, 수면제를 먹고, 이십 년 뒤에 일어나면 된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 투기를 교양처럼 말했다.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파리와 독일의 살롱에서 자랐다. 복잡한 선은 그리지 않았다. 한 가지를 반복했다. 시세는 자금과 심리로 움직인다. 둘 다 뉴스보다 느리고, 뉴스보다 정직하다.

투자자와 투기자를 구별하면서도, 둘 다 ‘매일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에서 풀어 주었다. 팁과 전신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잠을 권했다.

결말 · 1999년 파리에서 아흔셋에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쓰고, 여전히 말했다. 잠드는 일을 일찍 끝내지 않았다.

1912–2008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네 글자는 ‘이번엔 다르다’이다.

존 템플턴 · 최대의 비관 속에서 주문했다.

1939년 유럽이 전쟁에 들어갈 때, 그는 돈을 빌려 뉴욕 시장에서 1달러 미만인 종목을 모두 샀다. 백 개 남짓. 많은 수가 이미 파산한 상태였다. 사 년 뒤, 농담처럼 보이던 그 목록이 갚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비관을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진입의 기후로 다루었다. 강세는 비관에서 태어나 회의에서 자라고 낙관에서 익고 열광에서 죽는다. 너무 많이 인쇄된 문장이다. 원래의 행위는 단순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 돈을 놓는 것.

결말 · 펀드를 팔고 후반생을 기부에 넘겼다. 2008년 나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최대의 비관 이후, 새로운 증명은 더 필요 없었다.

1944–

주식에서 돈을 남기는 열쇠는 잘 고르는 것이 아니다. 겁나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피터 린치 · 유명한 펀드 안에서 가장 조용한 일을 했다. 알고 나서 샀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피델리티 마젤란을 운용했다. 연율 약 29퍼센트. 비밀 시스템이 아니다. 가게에 들어가 제품을 보고, 이해하는 회사를 사고, 못생긴 중간을 견디는 일.

좋은 회사를 팔아, 그때 더 뜨거운 나쁜 회사로 갈아타는 것이 가장 비싼 실수라고 경고했다. 추격하려는 사람을 위한 설명서처럼 읽힌다.

결말 · 마흔여섯에 마젤란을 떠나 가족의 시간으로 갔다. 정점에서 레버리지를 얹지 않았다. 스스로 고른 퇴장이라는 결말은, 유명한 이름들 사이에서는 드물다.

1899–1975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이사카와 긴조 · 일본 주식에서 인내를 직업으로 만든 사람.

오사카의 상인, 나중엔 ‘마지막 투기사’로 불렸다. 신문을 읽고 산업을 읽고, 조사를 포지션의 일부로 삼았다. 유명한 몇 번의 싸움은 대개 아무도 원하지 않을 때 주식을 손에 쥐는 일이었다. 1면에 난 뒤에 더하는 일이 아니었다.

만년은 세무와 얽혔고, 이름은 기적에서 논쟁으로 미끄러졌다. 방법은 여전히 분명하다. 그 업의 학생이 된 다음에 보유자가 되는 것. 조사 없는 용기는 또 다른 추격일 뿐이다.

결말 ·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전설은 일본 거래자들 입에서 아직 돈다.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한 줄이다. 조사하고, 견딘다.

1967–

구멍을 다음 한 건으로 메우려 했을 뿐이다.

닉 리슨 · ‘한 번만 더’를 은행의 결말로 썼다.

베어링스 은행의 싱가포르 선물 트레이더. 손실이 오류 계정에 들어간 뒤, 멈추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규모를 키우고 시간을 늘리며, 낙폭을 당장 이겨야 할 수치로 다루었다.

1995년, 고베 지진 이후의 시장은 반전을 주지 않았다. 손실이 보였을 때, 그것은 이백 년 은행을 끝낼 크기였다. 여기서의 추격은 스타일이 아니다. 숨기고 더하는 구조다.

결말 · 베어링스는 무너졌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형을 살고, 나중에 이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사람은 남았다. 은행은 남지 않았다.

공개 기록을 줄인 것입니다. 위인전이 아니고, 투자 자문도 아닙니다.